불혹 문턱에도 ‘오빠부대’ 붐빈다
한국서 앨범 첫 발매한 日 록밴드 스피츠
이승형기자 lsh@munhwa.com
이들을 처음 무대에서 보았던 건 2년전 4월의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날 내렸던 봄비처럼 이들의 음악은 조용히 다가왔고, 기억의 한복판에 명언 한 구절을 새겼다. “음악은 강요하는 게 아냐. 사랑과 같은 거지. 그저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면 된다고.” 일본의 남성 4인조 록밴드 ‘스피츠’. 이들은 이 세상에서 ‘감동’이란 걸 줄 수 있는 몇 안되는 밴드들 가운데 하나다.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격렬하고 후련한 사운드는 없다. 대신 간결하고 섬세하게 마음을 애무한다. 노약자나 임산부가 들어도 부담이 안될, 딱 그만큼의 록음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동안 소리 소문없이 내한 공연을 가졌던 ‘스피츠’가 마침내 본격적으로 한국을 찾는다. 이들의 새 앨범 ‘스베니아’가 최근 국내에서 최초로 공식 발매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 4월에는 내한 공연을 갖는다. 2001년 5월과 12월, 2003년 4월에 이어 4번째. 일본에서도 최근 68개 도시 순회 공연에 들어갔다. 지난 1일밤 일본 지바현 문화회관에서 열린 콘서트 현장에서 이들을 만나 음악과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피츠’가 누구인가〓듣고 있으면 마음을 자꾸 건드리는 음악이 하루 아침에 나오는 건 아니다. 구사노 마사무네(보컬), 미와 데쓰야(기타), 다무라 아키히로(베이스), 사키야마 다쓰오(드럼)등 4명의 67년생 동갑내기인 이들은 지난 17년간 ‘스피츠’에서 한솥밥을 먹어왔다.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기에 이들의 음악은 ‘이름값’을 하고 있다. ‘스피츠’란 이름은 ‘작은 개가 크게 짖는다’는 의미로 붙여진 것이다. 지금까지 11장의 앨범과 30장의 싱글 음반을 발표했으며 일본에서 이들 음반은 1000만장 가까이 팔린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스피츠’음악의 특징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그중 첫째가 노랫말이다. 소설이나 수필을 읽다보면 밑줄을 긋게 만드는 일이 대중음악에서도 일어난다. 새 앨범 타이틀곡 ‘정몽(正夢)’을 보자.
‘뻗친 머리 그대로 뛰어나왔어/오늘 아침 꿈의 여운을 껴안고/차가운 바람 몸에 맞으며 점점 상점가를 빠져나가고 있지/“이뤄질 리 없어”라고 중얼거리지만 또다시 예상밖의 순간을 바라고 있어/부디 꿈이 현실이 되어주기를… (중략)/얕은 풀장에서 장난치듯이 계속 진지하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어/엉뚱한 화풀이로 서로 상처주고는 되돌릴 방법도 없어서/조금도 잊을 수 없는 채로 어떻게든 무리하게 뚜껑을 닫았지/아무렇게라도 좋으니까 다이얼을 돌려줄래/어디서 본 듯한 이 길을 빠져나오자.’
가사에 어울리게 멜로디는 흐뭇하고 다정하다. 난해한 소리와는 거리가 멀어서 그 멜로디에 쉽게 빠져든다. 굳이 음악 장르를 따지자면 ‘모던 포크록’계열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이키델릭하고 펑크한 사운드도 이따금씩 소화해낸다.
마지막으로 이들 음악의 특징은 전곡의 90%를 쓰고 있는 보컬 마사무네의 음색이다. 그가 노래하며 “아~”라고 길게 음을 뽑으면 그 안에는 여러개의 감정이 교차하는 듯하다. 흥겨운 노래를 불러도 어딘가 쓸쓸하고 슬픈 노래를 불러도 어딘가 에너지가 느껴진다. 마사무네를 제외한 멤버들은 이에 대해 “그의 보컬에 천재성이 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새 앨범을 낼 때마다 변화를 주려고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헌신적이며 강요하지 않는 공연〓‘스피츠’는 ‘인연(因緣)’을 중요시하는 밴드다.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지만 18년전 한번 연을 맺은 무대 음향업체와 지금도 같이 일하는 식이다. 이들은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기 전부터 한국을 찾았다. 마사무네는 “인터넷을 통해 한국에 우리들의 팬이 있는 걸 알았고 그래서 당연히 라이브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도 인연인 것이다”고 말했다. 이들은 당시 수천만원의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내한 공연을 진행했다. 멤버들 모두 “일본 관객들보다 훨씬 더 열정적인 한국 관객들이라 공연하기가 더 편했다”고 회상했다. 모름지기 록밴드란 관객을 찾아 노래를 들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번 지바현에서의 공연 역시 헌신적인 느낌이 들었다. 놀랍게도 일본 관객들은 10대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런 ‘오빠부대’들이 있다는 건 이들의 음악이 그만큼 젊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공연은 정적(靜的)이다. 마치 부잣집 도련님이 반항의 시기가 찾아와 기타를 메고 노래하듯이 그렇게 공연한다. 요란하게 관객들을 선동하는 일 없이 오로지 음악으로만 자극한다.
공연이 끝난 뒤 함께 음악을 한 지 17년이 넘은 이들에게 ‘스피츠’의 정신에 대해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친구들이 그렇듯 평소에는 멤버들끼리 장난치지만 음악을 할 때 만큼은 100% 전력을 다합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무엇을 하자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겁니다.”
이승형기자 lsh@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