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森田恭子가 돌아본 Mr.Children과의 10년의 기록(1992~2002) - The Days with Mr.Children -

※ 森田恭子(모리타 쿄코)씨가 미스치루에 관한 개인자료들을 정리해 ‘02년에 투고한 특별기고입니다.(분량은 워드로 10포인트에 15장정도됩니다. 너무 길어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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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그 사람만의 ‘Mr.Children’을 가지고 있다. 그와 같은 연유로 인해, 자유기고가 森田恭子도 그녀만의 ‘Mr.Children’을 가지고 있다. 지금부터는 그 오직 하나뿐인 시점에서 뻗어나온 ‘Mr.Children’의 페이지를 펼쳐보려 한다. 그러하기에 사진은 없다. 10년간의 추억만이 있을 뿐...

▶ PROLOGUE
10년이라는 세월을 돌돌돌 아무렇게나 말아두었다. 어느 날 문득 한걸음에 내달아 과거라는 시간 속으로 여행의 발걸음을 내딛어 보자, 그 끝에는 아직 ‘Mr.Children’을 모르던 내가 있다. 그랬었다고 해서 딱히 불행했다거나 한 것도 아니고, 매일매일 즐겁게 음악을 들어왔고... (미스치루를 알고 있는) 지금도 무언가 바라고 또 부족한 듯한 느낌은 항상 어딘가 남아 있는 법이고.
하지만, 그날 이후 ‘Mr.Children’을 알고, 취재/인터뷰라는 형태로 만남이 시작되었고, 그들의 음악을 듣고, 어느덧 자연스럽게 울고 웃고 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데 또, 그렇다고 해서 내 인생이 그들로 인해 특별히 바뀌었다 그런 것도 아니고, 인생의 키워드를 ‘奥田民生(오쿠타타미오)나 우루후르즈, 스핏츠’ 등으로 바꾸어 글을 쓴다고 한들 또한 모두 말이 되는 이야기들이다. 막연히 흘려보내는 세월이라는 시간 속에 그들이 함께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기쁜 일이지만, 그래도 또한 자연스레 잊혀지는 날들도 때론 있는 법이고...
음... 마치 오랜 시간 짝사랑해오던 사람처럼?^^~ 포기와 동경, 굴절과 절망의 순간들이 얽히고 섥히어, 이 글은 모양새를 갖추어 간다.
그때부터 벌써 10년이 지났구나~ 하는 감개무량함은 그들과 마찬가지이고...(사실은 나에게도 그다지 없는 느낌이지만...) 10년에 한번 정도는 낡은 기사들을 정리해두지 않으면 뒤죽박죽되어 버리니... 그런 의미도 담아서, 옛날에 써두었던 기사와 인터뷰들을 부분 부분 편집해 싣기로 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들의 10년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고 하는 목적에 입각한 것도 아니고, 단지 파일이다. 자료다. 그냥. 너무나도 제멋대로고 한없이 개인적인...

■ 추억(1) : 첫 홀 투어

10년을 돌아본다. 일단 ‘0’부터 시작을 해야 계산도 쉬울텐데... 이게 완전히 중구난방 같은 세월이라... 이 10년!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고... 틀에 박힌 감상밖에는 생각나지 않는군. 실재로도 어떤 시점 하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하니... 그냥 짧다고 할 수만도 없는 세월이고, 그렇다고 그간 내 안에서 무언가 변한 점이 있나-하고 생각해 보면 또 별다른 토픽도 없었던... 그러한 10년 이였기에, 그것을 단지 ‘청산리 벽계수야~’하며 줄줄줄 운(韻)을 밟아갈 뿐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뒤틀어버린 ‘Mr.Children’과의 첫 만남이 바로 10년 전! 한참 데뷔 준비를 하고 있던 그들은 너무나도 소박한 훈남들이었다.
그로부터 도대체 그들 관련 기사와 인터뷰만도 얼마나 써 왔던가! 인터뷰도 수없이 했고, 그 사이 점점 바빠지는 그들의 스케쥴로 취재시간은 점점 줄어가고... 공연후기나 미스치루에 관한 내 사견만을 멋대로 써대기도 했었다.
그때부터 그들은 또한 얼마나 변해 왔을까? 또 변하지 않고 지금도 남아 있는 것들은? 지금까지 내가 썼던 원고더미들을 하나씩 다시 읽어가며 또 조금씩 수정도 해가며, 그런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선 그들의 첫 번째 전국 홀 투어(Hall tour)를 추적했던 기사부터.

■ 기사 본문
Mr.Children의 데뷔 이래, 처음으로 홀 규모의 전국 투어가 시작되었다. 타이틀은 ‘Innocent World Tour’. 새 앨범의 타이틀이 아니라, 싱글 명을 가져다 붙였다. 여기에는 몇 가지 감추어진 포인트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억측은 접어두고 9월 26일 카나가와 현민 홀(神奈川県民Hall)로 발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 공연을 모두 지켜본 감상을 한마디로 솔직히 말해보라면... 음...음... 그들이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말이 1층 좌석 제일 끝에서 보고 있던 나에게 까지는 전해지지 않았다고 할까...

얘기가 돌아가는데, 전번 투어였던 삿포로 라이브에 갔었던 적이 있다. 라이브 하우스에서 Mr.Children을 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을 안고서, 좁디좁은 공간에서 끊임없이 땀을 흘리며 연주와 노래에 몰두하는 그들을 보았다. 테크닉이네 창법이네 머네 하는 것들을 훨씬 넘어서서, 단지 4명의 마음은 같은 방향을 향해 있었고 그 기운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관객들의 마음 하나하나에 뛰어 들어와 공연을 즐기는 우리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순수하디 순수한 마음의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끝내줬던 그날 밤은 지금도 잊을 래야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기록적인 음반 판매고와 예상을 뛰어넘는 관객 동원 수 등을 배경으로 한 무거운 프레셔를 감싸 안고 이 투어에 임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단지 ‘순수함’뿐만이 아닌 방대한 종류와 스케일의 기대가 그들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라이브 구성은 초기의 넘버부터「Atomic heart」까지 그들의 모든 측면을 착착착 순서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데뷔부터 현재까지 Mr.Children의 집대성과도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실재로 그것을 관객이 되어 보면 왠지 원 CD를 그저 랜덤으로 돌리는 듯한 산만한 인상이 들었다. 그러고는 첫 부분 썼던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물론 작은 라이브 하우스 시절처럼 또 즐기려고 덤벼들면 못할 것도 없었지만, 문제는, 라이브 전체를 꽤 뚫는 하나의 느낌이 전해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무대위의 그들도 그런 점을 이미 감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연습실에서 만난 사쿠라이는 내게 라이브에 대한 감상을 물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썼던 이 느낌을 한마디로 요약해 말하는 것도 어렵고... ‘음...’ 그저 중얼거릴 밖엔 없다. “몸 상태는 어때요?” 거꾸로 질문을 던지곤 녹차를 탄다. “몸 상태는 괜찮은데 근육통이 왔어요.”라고 말하며 사쿠라이는 웃는다.

연습실 한켠에서 펼쳐진 스탭들의 회의 소리를 넌지시 들어보니, 이번 투어의 컨셉은 ‘거대한 모듬냄비 요리’라고 한다. 멋들어진 것(맛난 것)들을 이것저것 한데 모아 한번에 관객들이 좌~악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양으로나 내용으로나) 사치스럽기 그지없는 프로그램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한다. 투어 타이틀이 이렇게 붙게 된 것도 아마 이러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런 것을 바랬다면 말로만 그럴 것이 아니라, 진짜로 맛난 냄비요리를 마음껏 먹은 듯한 만족감에 빠져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시점에서는 고작 투어 4일째를 넘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한 번 더 그들의 공연을 보러가야겠다-고 난 결심했다.              

그리고 찾아온 10월 12일. 시즈오카(静岡)시민회관. 공연시작 한참 전부터 공연장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다. 이런 긴장감에 맞서기 위해선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충만한 파워가 어떤 경우에는 관객과의 상호작용으로 더욱 넘쳐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때에는 일순 균형이 무너져 분위기도 함께 가라앉는 등, 그들의 공연의 여러 측면을 목도한다는 것은 사실은 엄청난 스릴이고, 또 무대에 올라가 있는 그들 또한 패션 정보지 풍으로 얘기하자면 굉장히 섹시하다.

예정시간을 조금 넘겨 개막!
예를 들어 한 벌의 양복도 완전 새것 보다는 한 두 번, 아니 여러번 입어보고 나서야 결국 완벽히 몸에 착 맞아 들어가는 법이다. 그렇담 이쪽은? ... 그날 밤은 음 하나 하나가 몸에 쫙쫙 달라붙는 듯한 느낌의 밴드가 무대 위에 있었다.

사쿠라이의 MC.
“시즈오카에서 콘서트 하는 것은 처음이라서요, 정말 기념이 될만한 멋진 공연을 만들고 싶습니다.”
기념할만한 그 밤에, 그는 노래를 부르며 풀어 헤쳐진 푸른 셔츠 사이로 가슴을 드러내고 관객과 가장 가까운 무대의 가장자리에 홀로 서서 흐물흐물 허리를 흔들어 댔다.
대조적으로, 다른 3명의 멤버는 뒤로 한발 물러난 자세를 보였다. 예외적으로 홀의 맨 뒤 구석에서 홀로 연주에 몰두하고 있을 JEN의 표정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엔돌핀의 분비가 너무나도 활발한 사람. 슬픈노래를 부를때는 너무나도 슬프게, 즐거운 노래를 부를 때는 또 그 누구보다도 흥겹게 드럼을 두들겨댔다. 바로 그 전 삿포로 공연의 모습! 바로 그것 이었다! 갑자기 가슴한구석이 나도 모르게 뜨거워진다. 타하라군의 경우는 공연 전반부에는 그 예의 묵묵한 자세로 기타를 튕겼고, 후반에 들어서는 가끔씩 스타일리쉬한 액션도 한두 번 보여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이들의 투어에 참가하고 싶은 나카가와의 펜들은 절대 지각하지 말 것!-이 한마디만을 해두겠다.

사쿠라이는 2일째 공연 MC에서,
“시즈오카 하면 바로 축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하고 말했다. “여기에 올 때에 미우라 카즈 선수랑 같이 신칸센을 타게 됬어요. 엄청 긴장 했습니다^^;”라고. 그리고 “너무 바빠서 쉴 틈이 없네요.” 하고 관객들에게 푸념도 늘어놓는다. 그들과 관객 사이의 거리가 일순간에 좁아드는 장면! 어쨌든「Atomic heart」의 레코딩은 너무나 힘들었고, 하지만 여러분들이 우리 음악을 들어주는 것, 그리고 기뻐해준다는 사실-그것이 자신들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는 귀여운 아부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려나? 본인들이야 얼마나 자신에 차있는 곡을 만들어 내든 간에, 일단 스튜디오에 리스너는 없다. 리스너라는 존재가 있음으로 해 비로소 그들의 존재감은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다. 공연에서 이렇게 관객들을 만나는 것 이것이 바로 그 확인이 될 것이다. 스타와 관객이 만나는 그 순간엔 그 어떤 한 톨 거짓도 없다.

라이브는 슬슬 종반을 향해 달려가고, 업 템포의 곡들이 뒤를 잇는다. 나카가와와 타하라는 9번째 곡이 되어서야 겨우 자신들이 서 있던 위치를 벗어나 무대 앞쪽을 공략(?)하기 시작한다. 사쿠라이의 목소리는 곡에 따라 한없이 다정해지기고 하고 거칠게 변모하기도 한다. 공연의 텐션이 극에 달하면서 본래 CD가 가지고 있는 섬세함은 조금 무너질지 몰라도, 곡의 분위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목소리의 톤이 변하는 것 또한 라이브 공연의 묘미!  새 앨범에서 선곡된 ‘Round about~孤独の肖像’을 부를 때는 ‘何を欲しがってる’라는 가사에서 있는 힘껏 샤우팅!! 얼마 전 가진 앨범 인터뷰에서 그가 전하고 싶었다던 메시지, 그 메시지가 지금 강렬한 에너지를 머금고 관객들의 뇌리 속에 한방씩 전해졌다.

그러다간 또 차분히 관객들을 진정시키는 발라드를 부르는가 하면, 가까이 와 달라는 팬들의 귀여운 아우성에 응답해, 관객의 코 앞까지 가거나 하는... 이미 격양된 감정을 억지로 누르려 하지 않고, 그러다가 가끔 가사를 까먹기도 하고^^ 사쿠라이의 셔츠가 뒤집혀서 순간 그의 배가 보였다. 히스테릭하게 마이크 스탠드를 무대위에 내동댕이 쳐버린다. 그리고는 2바퀴 반 회전... 실로 분답스럽기 그지없구만ㅋㅋ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멤버들에 대한 깊은 신뢰를 등에 업고 그는 무대 위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헤엄치고 다닌다.

도대체 얘들은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 거야?~하고 앞에 서 있는 여자애들의 얼굴을 힐끗 훔쳐봤더니, 웬걸 친구로 보이는 둘은 이미 서로 망원경 뺏느라 정신도 없다. 사실은 그들에 대해서 ‘그다지 라이브를 좋아하지 않는 밴드?!’라고 마음대로 정의 하고 있었는데, 그 날 난, 그렇지 않다(어쩜 그렇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눈  바로 앞에서 그들로 하여금 증명 받았다. 점점 입기 편해지는 그들의 새로운 사운드의 옷에 몸이 닿으며, 그 화려하면서도 착용감 죽여주는 피부감촉을 발견하고 난 너무나 행복해졌다.    

라이브 전체의 흐름 보다는, 한곡 한곡의 퀄리티를 중시한다는 공연관(觀)은 사실 매우 어려운 시도이다. 그런데도 과감하게 거기에 도전하는 4인의 용사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쉬움 없이 알차게 선보인 신경지(新境地)였다. 「Innocent world」를 부르고 있을 때의 사쿠라이는 앞에서 연달아 격렬한 넘버들을 선보인 탓일까, 이상하리만치 음정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도 있는 그대로 관객들에게 보여주면서 Mr.Children은 다음 세상으로의 끝없는 여행을 이어갈 것이다.

그 다음이 보고 싶다. “또~옥 같은 공연만 계속 봐서 멀 하겠습니까?”라고 전에 사쿠라이에게 한소리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 내 마음이라면 이렇게 대답해 주고 싶다. “아냐~ 완전 달랐다니까!? 요 앞전에야 테그도 안 떨어진 새 옷들을 빳빳이 차려 입고 신인다운 풋풋한 긴장감을 보여줬잖아요. 근데 오늘은 몸에 완전히 익숙해져 버린 의상들이 이리 펄럭 저리 펄럭 나부껴 다닐 정도로 열광적으로 뛰어다니던데요?^^”

지금의 미스치루에게는, 어설프거나 후줄 그래한 모습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어느 한 부분도 놓치지 않는다. 완벽히 꾸민다. 하지만, 그 전에 멤버들과 그 4인의 생활전반을 둘러싸고 있는 스탭들의 마음속에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이 없었다면, 이런 것은 모두 겉치레뿐인 위험한 비즈니스로 끝나 버릴 것이다. 음악이란 그렇게 쪼잔하지 않다는 것을, 공연장에서 직접! 생생한 그들의 (목)소리로 더욱 더 진하게 느끼고 싶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그들의 콘서트장을 찾고 싶다. (94년 12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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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즈음부터, 급속도로 미스치루 멤버들과의 연락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야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서 취재하고 사진 찍고 그랬었는데, 점점 유명해지는 그들의 취재 스케쥴 표는 더욱 더 빽빽해져 갔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을 원하는 독자들의 목소리는 더더욱 커져만 갔다. 이런 반비례적인 상황을 어떻게든 해쳐나가기 위해서 당시 그들의 편집 담당이었던 千脇(치와키)씨는 내게 새로운 제안을 해 왔다.
당시 내가 기고하고 있던 잡지에는 매달 Mr.Children의 기사를 싣겠다고. 물론 별 다른 스케쥴이 없는 달은 머... 그러니 미스치루와 관련이 있던 없던 매달 빠지지 말고 미스치루에 대해 무언가 써달라고...

■ 추억(2) : 불가사의한 인력

그 날부터 千脇씨와 나의 새로운 도전은 시작되었다. 과연 어느 정도까지 미스터 칠드런에게 가까워 져야 할까?-하는. 그 구체적 방법으로써 첫 번째, 라이브 투어가 있을 때마다 재바르게 현장 현장을 뒤 쫒아 다닐 것! 두 번째, 그들의 릴리즈 타이밍에 정확히 맞추어 세심하고도 철저한 취재를 할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마음 속에 있는 ‘Mr.Children’이라는 존재와 다시 한번 진지하게 대면할 것. 그리하여 매우 감정적이고도 개인적인 원고를 써 낼 것!-이라는 너무나도 다른 성격의 작업이 바로 그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빨리 해 보고 싶었다. 이유야 단지 그들에 대한 내 원고가 너무나도 많이 쌓여있기 때문이었다. 千脇씨도 옆에서 내 작업 타이밍을 잡아주면서 격려해 주었고 여러 새 아이디어도 던져주었다. 그 덕분에 어떻게든 매달 원고는 써 나갈 수가 있었다. 그 시기에 난 라이터로서의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었던 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만나기 전의 일들을 그들의 기사 속에 이렇게 써 놓곤 했는데... ‘Mr.Children’이라고 하는 더할 나위 없는 사치스럽기까지 한 취재 재료를 독점하면서 매달 잡지에 특집 세션을 배치한다. 하지만 그것이 행복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몇 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 기사 본문
3년 전...아니 좀 더 전의 일이다. 寺岡呼人(테라오카 요히토)군이 내게 카세트 2개를 건내 준 일이 있다. “노래 엄청 좋아요. 제 특별 추전 작이니까 꼭 들어봐 주세요!”라며...
첫 번째 테잎에는 흑백사진을 복사해서 붙인 인덱스가 들어 있었다. 화질이 그닥 선명하진 않았지만 아무튼, 4명의 청년이 넓은 풀밭에 앉아서 엷은 미소를 띄고 있는 ‘듯한’ 사진이었다. 또 하나의 테잎 라벨에는 귀여운 손글씨로 ‘MR.CHILDREN’이라고 씌여 져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조금이라도 빨리 워크맨으로 들어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얼굴의 청년들이 부르고 있는지조차 모르면서 입을 크게 벌리고 씩씩하게 노래 부르는 ‘그’의 얼굴이 어쩐지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외우기 쉬운 멜로디와 가사가 있는 그대로 음이 되어 내 마음속에 전해 오는 안정감과 아직 다음어지지 않은 풋풋함, 그 둘 사이의 균형놀음이 재밋는걸-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들의 데모 테잎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낀 솔직한 나의 감정이었다.

당시, 난 오사카에서 정규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고 있었기에, ‘거기에서 소개하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명은〈MUSIC GUMBO FRIDAY〉로 FM 802에서 매일 2시간씩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글자그대로 ‘음악방송’이었다.
당시 내가 담당하고 있던 금요일 파트는 때마침 내년(=92년) 신인 아티스트 특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방송을 함께 만드는 스텝들이 각각의 취향에 따라 ‘강추’ 신인들의 음반(음원)을 준비해 오면 방송에 직접 소개 하는 늘상 있을 법한 기획이었다. 추천이유는 물론 각 신인의 대표곡을 방송으로 내 보내고, 청취자들로부터 투표를 받아 1위를 한 신인 아티스트를 방송에서 집중적으로 밀어준다는 컨셉이 있었기 때문이다.

M-AGE, 피너츠, 페-터-, 더 스릴, 로텐하츠... 등등 첫눈에 보기에 화려하기 그지없는 주목성, 화제성을 듬뿍담은 이름에 보컬의 아름다운 음색, 탄탄한 기초실력들이 결집되어 각각 개성적 특징을 이루며 차례차례 회의  석상에서 소개 되었다. 난 ‘Mr.Children'을 골랐다. 데모를 처음 들었을 때의 그 느낌, 너무나 순수하고 정직한 필이 가슴에 깊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신년이 찾아온 92년 1월 첫 번째 주 금요일, ‘스탭미팅’이라고 이름붙인 그 방송을 내 보냈다. 그 때 내가 골랐던 곡은 아마, 아니 확실히 ‘CHILDREN'S WORLD’였던 것 같다. 아직 레코딩이 마무리 되지 않았기 때문에 데모 테잎을 방송에 내보내는 강수를 두었다.
“올해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잘 부탁드립니다.” 하는 아직 만난 적도 없는 ‘그들’의 코멘트도 함께 흘러나간 기억이 있다. 결국 다음주, 대박이 터졌다. 청취자들로부터의 엽서가 물밀 듯이 밀려왔는데 압도적인 표차이로 1위가 되었던 것은 데뷔를 겨우 4개월 밖에 앞두지 않고 있던 Mr.Children이었다.
호오~ 대단한걸? 이렇게 엽서가 쇄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 의왼걸? 하는 방송 스텝들의 반응들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왔다. 그 가운데서 누구보다도 목소리가 컸던 것은 다름 아닌 나!였던 것 같다.ㅋ

라디오에선 이처럼 어느 정도 정보를 모아서 음악을 소개하는 입장의 사람보다, 그것을 예상도 못하고 받아들이는 리스너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아직 얼굴도 모르는 밴드의, 그것도 처음 들은 단 한곡에 그만 마음을 사로잡혀 버린다. 텔레비젼에는 텔레비전대로의, 잡지에는 잡지만의 그런 것이 있듯이, 라디오에는 라디오만의 ‘마술’이 있는 것 같다. 라디오에 나온 음을 자기 귀로 접하곤 ‘좋은데’라고 시작해 ‘또 듣고 싶어’라며 빠져들고 결국엔 ‘좋아져 버리는’ 마법! 거창한 이유도 없다. 단지 직감적인 노래의 파워가 그 인기투표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던 것이다. 멋들어진 광고 카피 하나 없던 Mr.Children은 그렇게 무언가 알 수 없는 ‘신기한 인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다. 그런 의외의 결과를 알고 있더라도, 당시 나는 그렇게까지 그들에게 관심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여기서 솔직히 고백을 하고 넘어가자. ‘솔직’이라는 단어를 억지로 갖다 붙여서... ... 아니, 아니... 벌써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었던 지도... 음...

92년 1월이라고 하면, ‘바비보이즈’가 해산을 선언한 해였다. 내가 ‘패티패티’라는 잡지에서 편집일을 하고 있을 즈음, 그렇게 데뷔도 하기 전부터 개인 마크를 하고 있던 밴드였던 것이다. 잡지로 전해오는 독자들의 엽서 속 앙케이트 순위, 음반 판매 수, 라이브 동원 수 등에 일희일비 하던 나였다.
동시기의 그들 또한 싱글이 히트를 치고, 수많은 팬을 확보하고, 결국 무도관(武道館) 무대에까지 서게 되고... 우리 잡지의 표지 모델로까지 등장하였다. 그렇게 좋은 박자를 타고 있었지만 언제나 좋았다고도 또 언제나 나빴다고도 할 수 없는 그들의 메이져 등장기(期)를 옆에서 쭉 지켜보면서 난 그들에게 무언가 말로는 할 수 없는 특별한 감정이입을 하게 되었다.

밴드로서 충분히 자극적이고 매력적이었던 그들은 점점 메이져화(化) 되어가고 결국 나의 (너무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바비보이즈’ 대용품이란 상(像)에서도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들은 변해 버린 것일까? 아냐, 아무리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더라도... ...어쩜 변하지 ‘않을’ 리도 없겠군... 환경과 상황에 따라 음악도 따라 변한다고 하는 너무나도 당연한 시스템을 지근거리에서 목격한 것이다. 그 뿐이었다.  

단지 그것이 조금 충격적이었을 뿐이다. 밴드가 언제가 한결같은 모습으로만 존재할 순 없다-라는 것을 처음으로 직감한 것뿐이다. 그 시절의 나는 밴드라고 하는 생명체가 무럭무럭 근육을 키워가면서 점점 전체적 형태를 바꾸어 가는, ‘그 과정’을 곁에서 보고 즐기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바비보이즈의 해산은 정말 아쉬운 뉴스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하는 복잡한 감정상태였다. 그런 시기였기 때문에 더욱 미스치루처럼 지금부터 세상에 나올 신진 밴드들에게 무언가 공허함 같은 것을 느끼고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내 자신이 미래에 대한 가능성만을 가득 품고 있는 그들의 (새로운) 음악에 잘 순응하지 못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는 얼마간, Mr.Children의 데모테잎은 내 워크맨 속에 고이고이 모셔졌고, 좀처럼 그들의 대항군이 될만한 음악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때는 매일 매일 조석(朝夕)으로, 바비보이즈의 라스트 투어 취재 때문에 정신없이 날아다녔기에 한동안은 미스치루를 잊고 있었다.

물론, 이건 모두 내 개인적인 추억...
친근감도 넘쳐나고, 미래로부터 한줄기 빛을 받은 듯 눈부시게 웃고 있는 4인의 밴드는 지금도 열심히 레코팅 작업에 몰두하며, 내일일까 모렐까 알 수 없는 그들의 ‘데뷔 날’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92년 3월 초순, 패티패티 편집부의 千脇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신인 밴드의 취재를 좀 부탁드리고 싶은데... 혹시 미스... 그... 아아, Mr.Children이라고 아시나요?”  
“그럼요. 잘 알죠. 방송에서도 반응이 엄청났었어요!! 드디어 데뷔하는 모양이죠?”
“네, 그래요. 5월 달에 첫 앨범이 나온다네요. 취재, 괜찮겠어요?”
“그 친구들... 귀~엽나요?”

이런 불성실한 자세를 어찌되었든 용서해 주시길 바란다. 그러나 오해를 막기 위해 한 말씀 드리자면, 밴드는 원래 Appearance가 굉장히 중요하다. 말끔한 얼굴과 긴 다리가 좋다-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런거야 어쨌든 상관없다. 다만, 눈빛, 서 있는 모습, 몸짓 등이 문제가 되니까 복장, 헤어스타일, 말투, 센스까지 음악이외의 것들이 그들의 음악을 대신 말해주게 될 테니까. 믹 제거(The Rollin' Stones vo.)는 그 두툼한 입술과 늘씬하게 빠진 체형과 몸짓이 있으니까 비로소 믹 제거인 것이다. 스티븐 타일러(Aero smith vo.)는 그 개구리 입과 얄팍한 허리가 있기에 스티븐 타일러이며, 만약 커트 코베인(Nirvana vo.)이 뚱뚱했었더라면, 그가 만든 노래와 가사는 완전 다른 이미지를 주었을 것이다. 같은 목소리 같은 창법으로 노랠 불러도 그러한 외형적 특징이 없다면, 가수 또한 사라져 버리고 만다. 이것만큼 분명한 답도 없을 것이다.

어떤 형태든 간에, 일단 취재의뢰를 받은 뮤지션에 대해서, 귀여운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게 잘 한 일인가, 그것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일단 물어본 것이다. ‘귀여운가요~?’하고...
덧붙혀 하나 더, 확실히 해 두고 싶은 것은, 여기서 말하는 ‘귀여움’이란 키티짱이나 테디베어의 그것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럼 무언가? 멋있나/무서운가/엉뚱한가/능글능글한가...하는 모든 것이 내포된 ‘귀여움’이다. 키요시로(?)나 히로토(?)나... 좀 더 있겠지만... 아무튼 인간적으로 ‘귀여운가 아닌가’는 음악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난 평소부터 생각해 왔다.

그러나, 여기까지의 설명은 모두 반성의 의미였고^^;, 어쨌든 사리분별 못하고 ‘귀여워요?’하고 툭 내던진 내 질문에 千脇씨는, “응, 거 웃는 얼굴이 이쁘던데.”라고 소감을 밝힌다.
결국 취재를 거절할 정당한 이유도 보이지 않고 千脇씨의, “일단 한번 만나보고 나서...” 하는 강력한 설득에 넘어가서, 결국 미스치루와 나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취재 자료로서 그들의 프로필과 데뷔를 장식할 1집「Everything」테잎이 사무실로 배달되었다. 데모테잎에 수록되어서 몇 번인가 들어본 곡들도 2, 3곡 들어있었다. 하지만 더 놀랐던 것은 첫 트랙을 장식하고 있던 ‘Lord, I miss you’였다. 가볍게 방긋방긋 웃고만 있는 친근감 넘치는 인상뿐이던 이 밴드가 조금은 어른의 얼굴을 하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후에, 아리나 클래스의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그들이 스테이지 위에서,
“저희들의 첫 컨셉은 사실 이 곡과 같은 ‘격렬한 러브송’이였습니다.” 라고 소개했던 넘버였다. 노래 안에서 직진하는 감정의 물결과 그것을 날려버리려는 자극이 어떤 음과 소리가 되어 서로 충돌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솔직한 고백이 한 소녀를 당혹스럽게 하듯, 그들은 노골적으로 거친 음색을 만들어 사랑을 노래하고 있었다. 정말로 이들에게는 무언가 밴드 전체를 꿰뚫고 있는 사상 같은 것이 있다고 이 노래는 말하고 있었다.

몇 번이고 반복하여,「Everything」을 듣고 또 들었다. 이미 그들의 메이져 데뷔를 기다리다 지쳐버린 리스너들도 많았다. 그래서 더욱 라디오 방송에서도 여러 번 그들의 노래를 내 보냈다. 해산해버린 밴드 따위는 쓱싹하고 기억 속에서 모두 지워내 버리고, 새로운 밴드의 탄생을 축복해주고 기뻐해주시기 바란다는-그런 느낌을 전해주는 앨범이었다.

아직 만난 적 없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모르면서, 인터뷰도 분명 막힘없이 잘 끝날 거라고 막연하면서도 분명한 예감이 들었다. Mr.Children은 분명히 ‘귀여운’ 사람들임에 틀림없다-라고 알 수 없는 확신이 들었다.

93년 3월 8일 록본기 아트센터의 메인스튜디오로 향했다. 사쿠라이의 22번째 생일 날이였다. (95년 5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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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낡아빠진 글을 당시 기사 카피와 대조하며 각색하고 있는 배경으로, 그때부터 10년 후나 되어 미스치루가 완성시킨 새 앨범의 넘버들이 흐르고 있었다. ♪당신의 한숨으로 세상이 흐려질 일도 없는데~♪ 세련된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가 쑤욱하고 가슴속을 파고 들었다.

■ 추억(3)
패티패티에 미스터 칠드런이 첫 등장하는 페이지에 짧을 글 하나를 써주었음 한다고 편집자로부터의 부탁이 있었다.

MR.CHILDREN : 후에 이 밴드명이,【‘미스터’와 ‘칠드런’, 이 정반대의 의미. 형태에 연연하지 않고 또한 어느 한쪽으로 영역화 되거나 카테고리화 되지 않는...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모두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을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92년 3월/사쿠리이 카즈토시)    

...라는 뜻으로 붙여졌다는 것을 알았는데, 내 나름대로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혼돈과 불안’등을 테마로 약 2000자 가량의 짧은 원고를 써 보았다.
‘어른이 돼야지 하고 생각하던 시절에는 / 굉장히 지겹고 따분했다 / 그 지겨움을 이겨낸 자만이 한명의 어른으로서 신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후략)’- 타이틀은 ‘어른의 방정식’. 그 시절 나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 용서할 수 있는 것, 용서할 수 없는 것’-이란 과연 무슨 뜻인가를 한참 고민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좋은게 좋은 거라고 왠만하면 다 용서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사안이 중요해지면 중요해질수록 더욱 용서하기 힘들어지는... 그것과 인간적 성장과는 과연 또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런 것을 잴 수 있는 자(계측기)가 있다면 난 또 어느 정도까지 어른이 되어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처음으로 Mr.Children을 취재했던 것도, 바로 이즈음. 상쾌하고도 소박한, 그런 별 거창한 의미도 없는 첫인상이었다. 사전에 '아직 취재 같은 것에 익숙지가 않아서요...' 라는 스텝의 양해도 있었지만, 이토록 말수가 적은 그룹을 눈앞에 두고 나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한번 질문을 하면 대답이 돌아오는 시간이... 너무 길다...-.,-

밴드의 결성 경위도, 그들 한명 한명이 어떤 경로로 음악을 업으로 삼게 되었나 하는 질문도 사실 흔해 빠진 내용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질문들을 빼놓고도 인터뷰는 나아갈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사쿠라이 카즈토시. 처음으로 음악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시기는? 이라는 질문에,
“중학생 때, 친척 형이...” 라고 얘기하기 시작했지만, 나머지 3명은,
“요 얼마 전에는 누님이라 그러지 않았어?” “아, 그렇지~!” --; 이런... 결국 이런 것이었단다.
“처음에 그 형이 甲斐バンド(카이밴드)인가 먼가를 듣고 있어서... 저도, 야~좋은데!-하고 느낌이 오더라구요. 그리고 누나는 언젠가 포크기타 한대를 사왔는데, 재미로 몇 번 뚱땅대던 것이 결국에는 흠뻑 빠져 버려 가지구요.”(92년 5월 호)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겨우 한마디 들은 대답이 이거다... 인터뷰 할 때마다 이야기가 뭔가 묘하게 엇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긴 해도, 장래 유망한 보컬리스트라고 당시 원고에서는 꾸준히 칭찬하고 있었고, 또 그 때 그는 어떤 한 키워드를(물론 무의식 중에) 나에게 제시해 주었던 것 같다.  

그들의 아마추어 시절이라고 한다면, 때마침 밴드 붐이 정점에 달해있던 전성기였다. ‘오징어튀김(이카텐→밴드명 같습니다...)’ 등을 시작으로 세상에 하나둘씩 선보이기 시작한 그런 ‘밴드’들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하는 질문에는,
“아~저런 방법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요, 저로서는 그다지...” 라고 사쿠라이는 답했다.
하지만 타하라가, “아닌데...” 하고 앞의 발언을 걸고넘어진다.
“잊어버렸다. 옛날 그 마음을... 전부 잊어 버렸어요^^;.”

밴드 결성 때 얘기를 물어보아도, 그 후의 라이브 하우스에서의 에피소드를 물어보아도, 그들은 옛날 일들을 그다지 기억 속에 담아두지 않고 있었다.
“에~ 다 잊어버렸어요?” 하고 일부러 놀란 모습을 보이면서도, 실은 난 무언가 혹~해 있었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옛날 일들은 금방금방 잊어버리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거꾸로 어린 시절이나 아주 옛날 일들을 척척 기억해 내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혐오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곧잘, ‘몇 년 몇 월 몇 일 어디에서 있었던 라이브에선 말이죠...’ 하는 식으로 받아치거나, 어린시절의 추억을 당시 사회 분위기, 주위 풍경등과 함께 상세히 들려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정말이지 존경스런 마음이 생길 정도이다.
또 내가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잊고 싶은 기억들을 한참 기억하고 있다가, ‘너, 옛날에 이랬었지^^’ 하는 식으로 까발려지는 것에도 익숙지 않고... ‘기억’이란 존재가 나에게 있어선 사실, 어떤 면으로 보아도 그닥 쓸모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 자리에 가서, 사쿠라이의 입장을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의 경우엔, 나처럼 기억회로에 무언가 장애나 의식적 거부를 행사 한다기 보다는, 지금 워낙 빠른 템포로 음악활동에 매진하고 있는지라, 지나온 시간 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꼼꼼히 챙기고 기억하기 보다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판단을 우선시 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했기에 지난 일들을 ‘쉽게 잊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Tomorrow never knows’의 그 가사, ♪인간은 불쌍할 정도로 쉽게 모든 것을 잊고 사는 생명체/사랑받던 기쁨도 외로웠던 과거도♬~~~ ‘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잊는다는 것은 또한 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의 노래는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듯이 들려온다. ‘망각’의 방대한 힘을 처음으로 인식시켜준 송 라이터가 다름 아닌 ‘그’였다는 사실! 나는 지금도 분명히 알고 있다.

이야기를 92년 3월로 돌려본다. 첫 인터뷰에서 밴드는 질문 하나하나마다 장고를 거듭하고 있었다. 겨우 적합한 답을 찾는다 해도 그것은 언어로써 간결히 정리하는 단계에서 다시 막혀 하는 모습이었다. 여기에는 당연 질문자의 책임도 있어, (인터뷰를 부드럽게 이끌지 못하는) 나의 무력함에 속으로는 내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그 와중에 千脇씨가 사쿠라이의 생일을 축하한다며 케이크와 간식을 잔뜩 사왔다. 모든 취재가 끝나고 우리는 케익을 완전분해 시켜버렸다.(^0^~) 그리고 달랑 두 조각 남은 케익을 사쿠라이는, “이거 집에 가져가도 괜찮겠습니까?” 하고 물은 뒤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두 팔로 조심히 안아 집으로 돌아갔다.

그 누구 한명의 목소리도 유별나게 크거나 하지 않고, 얘기의 내용 또한 너무나 순박했다. 그런 서툰 말과 말 사이에서 ‘성실함’이라는 느낌이 팟~ 하고 내 가슴속에 날아들었다. 그들과의 첫 만남은 그런 취재였던 것 같다.(95년 6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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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4) : 사랑에 등을 돌리지 말아요

이렇게 옛날 자료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있으면, 덩달아 얼굴이 화끈거리는 나를 느낀다. 기본적으로 편집장으로부터 “아무리 개인적인 감상이라도 모두 OK!”라고 허락은 받았다손 쳐도, 어느 날 그 좋아하던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가 방일했을 때 몰래 기자회견에 잠입했던 감동마저 아무렇지 않게 천진난만한 글로 엮어 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꺄~~’ 하는 그 마음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소중했다고, 당시의 모리타(나)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제게 있어 너무나도 순수하고 신성한 작업입니다’ 라고 했던 니콜라스의 말에다가 조금은 억지를 붙여, 그럼 Mr.Children에게 있어 음악이란?... 하는 자문을 던지고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 기사 본문
“아무리 초호화 저녁식사를 하더라도, 맛난 술을 마시더라도, 신나게 놀고 예쁜 여자들이랑 어울려 봐도 결코 채울 수 없는 마음이 있는 거란 사실을 뼛속까지 실감해서요...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도 한참을 무엇을 해봐도 그 허무함을 채울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es」를 완성하고 사전 프로모션이 막 끝났을 즈음, 제 자신이 엄청나게 충실해져 있는, 꽉 차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다시 자신을 되찾은 듯이.”(95년 5월 호)
사쿠라이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 “그저 음악만 앞으로도 꾸준히 할 수 있음 좋겠네요.” 그에게 있어 음악은 순수하고도 또한 신성한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것은 결과를 도출해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그렇기에 더욱 더 사치스런 대답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깊고도 따뜻했다. 도구로서의 언어라는 측면 말고도, 거기에 도달하기까지의 광적이고도 공격적으로 지나온 시간의 무게가 충실히 묻어나는 한마디였다.

이전에, 데뷔 1주년을 맞이하는 미스치루에게, 데뷔전으로 가장 크게 변한 게 먼가요? 하고 물었던 일이 있다.

ꋯ타하라 : “전 데뷔하면 어떻게 되겠구나 하고 생각해 둔 변변한 이미지도 하나 없었거든요. 그래도 지금 여기까지 와서, 아~ 이런 것이었나-하고 괜시리 놀랄 일도 없구요... 그다지 힘들었던 것도...”
ꋯ나카가와 : 전후로 어떤 ‘갭’이 있다, 머 그런 건 아니구요. 아직 아마추어 티를 못 벗고 있다고 할까? 그냥 그대로의 모습으로 여기까지 온 거니까... 지금 내가 하는 게 ‘일’이다 하는 느낌도 별로 못 받았구요. 그저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고, 보세요, 모든 게 새로운 일들뿐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최근부터였나? 아 이게 나에겐 일이고 업무구나 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게...

프로 의식의 새싹이 이제야 나기 시작하는 건가? “야~ 그렇게 거창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JEN이 대답한다.

ꋯ스즈키 : “저희들끼리 서로 좋아하는 일들을 하는 것 뿐 이구요. 그래도 일은 일이고...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굉장히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건데... 일단 그저 필릴리 놀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ꋯ나카가와 : “하지만, 라이브나 레코딩도 그렇지만 어떻게 하면 좋 더 좋은 퀄리티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고민은 하는데요... 이마 이것도 결국 그런(프로) 의식에 기반 하지 않는가 싶어요.”
ꋯ사쿠라이 : “음악을 만든다고 하는 기쁨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구요. 좀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하는 것도 잘 알고 있구요. 아무튼 프로가 되고 나서는, 우선은 내 음악을 듣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전제해서, 그런 사람들을 더욱 불려가야겠다-고 하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니까요. 그러면 점점 더 의욕도 생기고... 이건 재미없는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스탭들이나 생각할 법한 뒷이야기들도 점점 알게 되고... 이 대중음악 씬이나 차트 등의 일명 ‘주류’라는 것과, (질 떨어지는 타인의 노래들이) 왜 이정도 만으로 차트에 쉽게 들어가 버리는 거지? 히는 생각들도... 그런 엄청 분한 마음을 가지고... 지금까지 그저 멍하니 있었다면, 모두 절대 몰랐던 일일 것이고, 그 사실에도 생각이 미치고. 거기에 좀 더 열심히 도전해 봐야 한다라고 하는 생각은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의 ‘지금’이 벌써 2년 전(=93년)의 일이다.

그들의 음악은 계속 성장해 갔고, 그들만의 메시지도 점점 명확해 졌으며, 그들을 갈구하는, 원하는 사람들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하지만, ‘작곡한다는 기쁨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고 그 시점에서 벌써 그는 명확히 선을 그어 놓고 있었다. 앞에는 ‘결과를 이루어 놓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썼지만, 아니야. 어찌 보면 좀 더 기본적인 자세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영화,「WILD AT HEART(광란의 사랑)」의 후반부에서, 깡패들에게 당해서 길가에 널부러져 있는 세라(니콜라스 케이지)에게 착한 마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이렇게 얘기했었다. “사랑에 등을 돌리지 말아요”
자신이 믿고 사랑해주는 것들에게, 또 자신을 믿고 사랑해주는 이들에게 등을 돌리지 말라고... 세라는 일편단심 사랑했던 연인의 곁으로... 그리고 노래는 흐른다.「Love me tender」꺄~~~

아무리 힘든 상황에 직면해도, 스스로 대항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해.(95년 7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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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5)

결국, Mr.Children이 그 음악이라는 아름다운 영혼으로 당시의(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일본 음악 씬에 끝없는 도전하는 자세에 성원을 보내고 싶다는 결론의 원고였다.
아니, 그들과 만나고, 얘기를 나누고 그 뒤로는 그들의 멋진 음악이 흐르고 있다. (그 가운데) 나는 멀리서 성원을 보낼 수밖에 없는 방관자였다. 때로는 그들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 휘둘리는 것 또한 그저 기쁨으로 여기는...

92년 9월 사쿠라이는 본지 최초로 단독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분명히 소니 메거진 건물 근처의 한 찻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멤버들과 함께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표정으로 조금은 더 긴장해 있는 사쿠라이가 눈  앞에 있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지금은 러브송이 많은데, 그 외의 것들을 테마로 잡은 곡들도 쓸 수 있으려나?”하고 질문했다.

“글쎄요. 그다지 정치적인 얘기는 쓰고 싶지 않구요.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해서 그다지 불만이 없어요. 예를 들어 정치얘기를 노래로 만든다거나 하는 건 상관은 없는데, 그 사람(아마도 고바야시인 듯)은 아마도 학을 떼지 않을까요? 그런 얘기라면. 그런데 한편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라도 저를 둘러싼 환경이 또 변한다면... 음... 변할지도 모르겠네요.”
아직「Kind of Love」가 발매되기 전의 이야기.

데뷔하고 5년. 결코 길다곤 할 수 없는 세월이 흐르고 그들의 음악을 대하는 사고방식에도 큰 변화가 왔다. ‘연애’도 포함해 마음속에서 번져가는, 억누를 수 없는 여러 가지 충동을 사쿠라이는 음악의 형태로 간단히 변환시켜 간다. 음악을 대하는 옛날의 가벼운 자세도 이제는, 열정을 더욱 쏟아 붓는 엄격함으로 바뀌어 있다. 차례차례 발표되는 그들의 새 작품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92년 데뷔, 93년부터 슬슬 히트하기 시작, 94년은, “제대로 날개를 한번 펴보는 한해가 됐음 해요.” 사쿠라이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93년은 정말 열심히 여러 가지(노래, 경력 등)를 차근차근 쌓아온 한해였던 것 같아요. 새 앨범이 그 정점을 장식하는 사건이지만, 좀 더 인정받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거나, 좀 더 많은 관객들을 불러 모으고 싶다 하는 마음도 줄곧 가지고 왔기에... 그런 의미에서 청자들을 굉장히 의식하며 보낸 한해이기도 했네요. 하지만 현 단계의 미스치루라는 그릇 안에 이 이상은 무리하게 담아선 안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들이 마음껏 즐겁게 활동하는 지점과 관객들의 욕구가 맞아 들어가는 그 접점이, 지금 이 단계에서 벌써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상태로 아무리 경력을 쌓아간다 손 치더라도 만네리(메너리즘)에 빠지게 될 것이고, 올해는 일단 한번 다 까부수고 난 다음에 다시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라고 생각도 하고 있어요. 암튼 최근에는 무언가 아니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라는 생각도 들고...”

현재의 연장선이란 느낌으론 더 이상 밴드를 하고 싶지 않다고. 그는 분명히 선언했다. 그런데 다음달,
“무조건 다 부셔버리고 새로 시작할 일이 아니고, 있는 건 있는 그대로 남겨두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마음으로 새로운 결과물들을 쌓아가고 싶군요*^^*”라고 앞서 한 말을 급수정.

“음악을 대하는 자세의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음악을 이런 식으로 바꿔야지’ 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는 제가 새 곡을 쓰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그럼 저도 덩달아 기뻐지고... 하는 형태였는데... 극단적인 얘기로, ‘차게 & 아스카’나 ‘dreams come true’를 듣는 사람들에게 마저 ‘미스치루 좋지 않아?’ 하는 식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미친 듯이 달려왔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는데요. 이번에는 저희들이 이 음악 씬에서 밥벌이를 하는 이상 적든 많든 간에 향후 이 음악 씬의 퀄리티를 한 단계 레벨 업 시키는 데 공헌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저는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지금 이대로 당장은 브레이크(히트)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이 단계에서 벌써 ‘대중’이란 존재를 너무 의식해서 곡을 쓰고 있고 좀 더 높은 곳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그게 아니라 제 자신이 좀 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굉장히 신경을 쓰려고 하고 있어요. 정말로, 앞으로 10년 뒤에 들어도 통하는 멋진 음악을 만들자는 자세를 견지하면서 지금부터 조금씩 준비하고 확신해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 지금 당장 아주 팝스러운 곡을 써서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것이 10년 뒤 미래의 우리들에게 있어 과연 얼마나 가치로운 일인가 생각해 보면, 또 그런 게 아니거든요.”

자신들이 서 있는 이 일본의 음악 씬. 그곳의 ‘인기 차트’란 것을 한번 경험해 보고 나니, 그곳은 오직 실력만이 아닌, 여러 가지 힘이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돈과 시스템이 차트를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은 엄청난 환멸을 느꼈을 런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저희들이 9위(당시「CROSS ROAD」의 순위)가 되었을 때였는데, 음... 도대체 머지?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어요. 하지만 달리, 음악적으로 이런 것을 해주마! 라든가, 좀 더 어렵고 복잡하게 꼬아대는 음악을 보여주마!-하는 생각도 없었는데... 아무튼 그런 자세의 상이함이 음악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작품이 나온다면 정말 좋을 텐데 하며, 그 해 가을에 발매 예정이었던 앨범(후에「Atomic heart」로서 완성)의 존재와 성격을 3월을 갓 맞이한 단계에서 그는 이미 예고하고 있었다. 아직 구체적으로 구상해둔 바는 없다고 전제한 뒤, 덧붙여 이런 말까지...
“단지, 도쿄돔과 어울리는 곡을 만들어 보자-하는 거죠^^.”
부끄러움 띈 웃음이었지만, 그렇게 자신의 말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그리고 또 다음 달.

“또 생각이 바뀌었어요. 하하하. *^^* 역시 그런 말은 일단 차트 1위를 한번 해 본 다음에 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겠죠? 그러니... 자, 일단 톱을 노리겠습니다.”
이 발언을 내던진 지 몇 개월 후, 드디어 그들은「Innocent world」로 멋지게 1위 탈환에 성공한다. 미스치루는 억눌러도 억눌러지지 않는 ‘빅 네임’이 되었고 그 후로 차근 차른 밀리언셀러를 끊임없이 발표해 간다.

97년 3월, Mr.Children은 실재로 도쿄돔 스테이지에 섰다. 돔(Dome)에 어울리는 밴드로 성장해 있었다. 밴드 초기 시절의 그리움 가득한 팝 넘버들도 그 자리에서는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Mr.Children은 지난 5년간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한음한음 세상 속을 흘러가고 있다. 지금도. 그리고 언제까지고.(97년 6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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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6) : 1995년 최후의 목격

데뷔 5주년을 기념해 과거의 발언들을 재구성해, 이런 원고를 만들어 보았다. 당시는, 이런 변덕쟁이가 있나-,.- 했었지만, 하지만 예언자와 같은 사쿠라이에게서 눈을 땔 수 없던 나날들이었다. 발언 중에 “10년 후의 우리들”이란 말이 바로 현재의 그들 ‘Mr.Children’이다.

이야기는 다시 조금 돌아간다.
1995년 최후의 목격! 이런 제목이 붙은 기사 원고를 찾았기 때문이다. 요상스런 기사다. 하지만 당시의 미스치루를 감싸고 있던 공기는 이처럼 이상스러웠다. 그들과 컨택하는 가치나, 그들과 관련된 수많은 가치와 지표가 끝을 모르고 천정부지처럼 오르고 있는 느낌. 그 와중에 나는 이토록 엉뚱한 기사를 쓰고 있었구나...

■ 기사 본문
나도 별 자각도 없이 이 일을 해온지 10주년(?)을 맞고 있지만 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편집자도 스텝도 아닌데, 단지 촬영장소로 나가라니...
그 날, Mr.Children은 도내 모 스튜디오에서 패티패티 수록 분 촬영을 위해 모두 모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인터뷰는 불가. 왜냐하면... 왜지?? 당시 그곳의 사정이 어땠었는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촬영하는 건 봐도 좋다고 해서, 보러 왔다. 이것은 그것에 대한 보고(報告)다.

최근 몇 달간, 미스치루의 인터뷰는 없다. 하지만 매달 할당된 페이지는 있다. 독자들이 그들을 원하고 있다. 그래서 여러 편집자들이 모아준 정보를 근거로 기사를 써 내는 것이 나의 임무다. 그렇다. 그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라고 내 자신 속에서 확신한 다음, 그렇게 스튜디오로 향했다.
멤버들이 왔다. 뒤이어서 지금 들으면 굉장히 곤란하겠다 싶은 말을 사쿠라이에게 바로 들어버렸다.
“엥?! 오늘 인터뷰도 있나요??”
웅... 관계는 없지만 서도... 그냥 보러 온 거야. 나. 그니까 방해할 생각도 없고...
“보러온 것 뿐?”
그 어정쩡한 입장--; 좀 이해해 주시게. 사쿠라이군...
“영락없는 신곡 인터뷴가 하는 느낌이었는데...” / “머머멋! 신고~옥??”

그 시점에선, 신곡이 나온다는 것조차 몰랐었다. 지금에야 간혹 TV광고도 흘러나오곤 하는 바로 그 곡, 게다가 이번 호가 나올 때쯤에는 이미 방송을 시작하고 있을 후지 테레비계(系) 드라마「ピュア(PURE)」의 타이업!
하지만 당시 다정한 사쿠라이군은, “참... 별 수가 없군요. 그토록 듣고 싶으시다면야 들려드릴 밖에^^.” 라고.
아직 듣고 싶다고 말 한 적도 없거늘-.,- 카세트 테잎을 빌려주었다. 카세트의 인덱스에는「また会えるかな」,「名もなき詩」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 커플링 곡이 1번 트랙으로 되어 있지? 여기엔 별 뜻은 없고 가끔씩 이런 순서로 프로모션 테잎을 만들곤 했을 뿐이란다.  

신곡이 울려 퍼지며 촬영은 시작되었다. 착착 달라붙는 후렴구가 인상적인「また会えるかな」, 대조적으로 차분하면서도 강한 울림을 간직한「名もなき詩」.

첫 번째 감상은 눈 깜짝할 새에 끝났다. 음... 한 번 더 들어볼까 하며, 손은 벌써 카세트의 되감기 버튼을 누르고 있다. 또 지긋이 감상한다. 그리곤 또 한번, 또 한번...
안타까운 것은 촬영 스튜디오의 벽이 모조리 콘크리트라는 것. 이래서야 음들이 사방팔방 반사되어, 가사가 제대로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名もなき詩」는 그렇게 몇 번이고 또 듣고 싶어지는 너무나도 이상한 인력을 가지고 있었다.

멤버들은 메이크업을 하거나 옷을 갈아입거나 하며 스튜디오와 드레스 룸을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신곡의 반응이 궁금했는지, 사쿠라이는 내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また会えるかな」는 있잖아. 뭔가 적당히 꼬시는 말을 찾는 듯, 그냥 술주정뱅이의 노래 같더군^^ ”
앗, 인터뷰도 아닌데 멋대로 곡 해설을 해버리고 말았군... 당황하는 나^^;
“「名もなき詩」는 어땠어요?” 사쿠라인 연이어 묻는다.
감상을 묻길래 나는 느낀 그대로 대답하기로 했다.
“한번 들으니까, 또 듣고 싶어지고 그래서 다시 한번 듣고 나면 또 듣고 싶어지고. 들으면 들을수록, 캬~ 좋은걸~하고 생각되던데!”
“바로 그거예욧!!” 하고 그는 마치 예상이 완벽히 들어맞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는 또 다시 촬영에 임한다. 평소와 같은 취재였다면, 그 사이사이 4명을 돌아가며 취재하고 있을 정신없는 시간이겠지만, 오늘만은 ‘완전 프린(Free)걸~’ 하고 한껏 게으름을 부린다.
“오늘은 별로 안 바쁘신가봐요?” 다시 사쿠라이는 날 의식한다.
“인터뷰라도 할래요?” / “응? 그럴까?” / “테잎은 그만 돌려도 좋으니까” / “엥?” / “건강하세요? 같은, 흐흐”

신곡은 있잖아요. 마라톤 할 때 번뜩 생각이 났었는데. 그로부터 종교와 철학의 차이랄까?... 종교는 ‘죽으면 천국에 간다잖아요’ 그리고 철학은 ‘있는 그대로 죽음을 받아들일 것’ 머 그런 사고방식인데, 그 두 이야기가 이「名もなき詩」의 가사와 관계가 있을까하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쿠라이는 분명 본격적으로 신곡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음에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좋은 노래를 만든다. 그리고는 그 노래를 사람들이 얼마나 들어주길 바랄까, 또 도대체 얼마나 들려주고 싶을까. 그런 그의 순수한 순간을 목격한 날이었다.

독자 여러분, 여기부터는 사쿠라이씨가 전해달라고 한 말씀입니다. 물론 신곡에 대해선대요. 꼭 이 말만은 기사에 써달라는 부탁까지 받았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언제 죽어도 여한은 없다’-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이「名もなき詩」를 만들고는 이 노래를 레코딩하고 실재로 부를 때까지는 절대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말에 대한 증명은 드라마 안에서 흐르는 노래를 들으며 충분할 만큼 느끼고들 계시겠죠? 여러분~.

난 그때 정말로 질문 폭탄을 쏟아 붓고 싶었다. 하지만 그 날의 미스치루는 자료부족, 상황부적절, 아무튼 무언가가 부족하여, 의외로 쉽게 포기해 버리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하여 그들의 신곡에 빠져들 뿐이었다.

참, 이런 날도 있구만...(96년 2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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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7)

신곡이 일단 완성되면 빨리 좀 들려줬음 좋겠다. 이런 자세는 당시도, 그 후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들은 변함없이 견지하고 있다.
긴 휴식기간도 있었고,『DISCOVERY』의 발매시점에 맞추어 근 2년 만에 그들과 다시 만났을 때에도 그랬다. 아직 자켓 제작도 마무리 되지 않은 그 앨범, 업계의 그 누구라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손에 쉽게 넣을 수도 없는, 그렇게 귀중한 음원을 조용히 千脇씨와 나만 불러 미스치루 멤버들과 둘러앉아 감상회를 가진 기억이 있다.

JEN의 눈 바로 앞에 앉아서 음악을 듣고 있던 나는 심각하디 심각한 가사에 맞추어 기분 좋게 박자를 맞추어 가는 그들이 너무나도 이상해서 노래에는 감동하면서도 웃을 수밖에 없는 그런 어색한 공간 속에 몸을 던져버릴 꼴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JEN의 대각선 반대쪽에 앉아있던 千脇씨는 단지, 그저 단지 미스치루의 신곡에 놀라고 또 놀라고, 두근두근 가슴이 격앙되었던지, 결국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아니, 아마 그 어느 쪽에게도 우연히 엄청난 보물과 조우한 것처럼 귀중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실재로 직접 사쿠라이에게 음반을 건내 받지 않더라도, 그와 똑같은 느낌의 두근거림을, 그리고 참고 참아도 억누를 수 없는 마음을 팬들을 대신해 부탁 받은 느낌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밴드 정신을 항상 멋지게 증명해 보이면서도 그 밴드라는 카테고리에서 해방된 밴드. 바로 Mr.Children이다. 그들의 음을 흠뻑 들이마시며 오늘도 베란다에 나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중간한 계절위로 구름이 유유히 지나가고... 혼잣말을 한다. 자! 오늘도 힘내자! 라고... 너무 단순한가요?^^ 아니야. 힘내세요~라고 한마디 듣는다고 바로 급방긋 되는 게 더 단순한거 아닌가? ♪꿈도 희망도 도대체 있는겨 없는겨~ 라고 외쳐주는 그들이 있으니까 더욱 힘 내야하는 거 아니겠어! 이게 더 단순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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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8) : 노래하는 사람

그리고 드디어 찾고 찾던 그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왜 찾고 있었냐고요? 어흠~ 자, 그럼 여기서 제 자랑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제 새로운 인생을 열어준 기사거든요. 바로 BREaTH와의 만남입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싶었다. 새로운 음악잡지를 하나 만들어 보자-하는 근거도 밑도 끝도 없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좀처럼 밀어붙일 테마가 없는 상황이라, 언제나처럼 패티패티에서 미스치루의 기사를 별 목표도 없이 줄줄 써대는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끔씩 TV에서 해주는 영화에서 힌트를 얻어 이런 것을 쓰곤 했다.

그 반년 후, 노래 부르는 사람의 잡지(일본 최초의 보컬리스트 전문지) BREaTH가 창간되었다. 거기에 사쿠라이가 나와 준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었지만.

■ 기사 본문
오랜만에 TV에서 미스치루를 보았다. 노래하는 사쿠라이군을 보고... 드디어 그 부분을 부르는 찰나. 사쿠라이의 얼굴은 지긋이 헝클어진다. 노래야 부르려고 치면 누구나 부르겠지만, 꼭 그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 사람, 가장 어울리는 적격인 사람이 있는 법이라. 절대적으로...
사쿠라이도 그 중 한사람이다.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글로 정리하는, 이번에는 그런 취지의 글이다.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악기. 그것은 바로 사람이다.
어떤 빈티지 기타소리도 고가의 드럼세트도, 또 모든 기능이 탑재된 신디사이져도 결코 비할 바가 못 된다. 자극적이고 감정적이며 독선적이면서도 다정한... 세상의 어떤 형용사가 와도 잘 어울리는 악기, 인간! 바로 목소리이다.

- 있잖아. ‘카스토라토’라는 영화 봤어?

이것은, 아름다운 음색의 보이 소프라노로서의 소질을 보이다 어른이 되지 못하도록 거세를 당하고, 경이적인 목소리만 유지한 채 오페라 가수로서 살아간 한 실존 청년의 이야기이다.
‘노래를 부름으로 해 비로소 너는 존재할 수 있다. 노래하지 않는다면 너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거야.’라고 경도되어, 트라우마(심리적 상처)에 괴로워하면서도 완벽한 하나의 ‘악기’로서의 삶을 보내게 된다. 주인공은 파리넬리. 슬프도록 잔혹한 이야기이다. 음악에의 순수한 열정이 넘쳐 흐르는 영화였다.

음악은 정말 대단하구나~ 물론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인간이라는 악기가 연주하는 소리라는 새로운 관점에 엄청난 쇼크를 받았다. 지금까지도 물론, 인간의 목소리란 것에 관심이 있었고, 남자가 좋아지는데도 사실은 알고 보면 목소리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니까.

좋아하는 밴드도 음이나 센스나 외모나, 체크포인트는 여러 군데 있지만, ‘보컬리스트의 음색’이라는 것 또한 좋고 싫음을 좌우 짓는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또 있다니까. 밴드의 연주나 곡은 엄청나게 좋은데 그 보컬의 음색이 영 아니라던지 하는... 있죠? 없어? 난 있다고 보는데.

그 무엇도 너무나 투명하게 통과시키는 청량한 음색이 꼭 좋은 것만도 아니지만...

허스키 보이스나 건조한 음색, 달달한 목소리, 슬픈 목소리... 서로 작은 차이와 뉘앙스만을 가지고 좋고 싫음이 갈라진다. 물론 같은 허스키라도 그 안에서 또 취향은 갈라지지만, 결국 그것은 개인적 문제.

소리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다. 호감을 느끼는 사람과 얘기하고 있으면, 이 사람 말투 괜찮네~ 하고 느끼는 순간이 있지 않습니까? 졸린 말투인데도 그 끝마다 날카롭게 올라간다던가 하는. 아 세부적인거야 아무래도 좋겠지만...흠...

그렇다 보니 당연히 창법이라는 문제도 관심의 대상이다. 같은 음표의 같은 멜로디를 부르더라도 다르다. 완전히 다르다. 음성과 창법, 그 안에서도 가장 좋은 놈, 가장 적절한 결합, 최상의 융합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 어려움의 크기만큼 큰 행복이라 할 수 있다.

절망적인 노래를 들을 때도 그 음색의 박력 등에 완전히 기분이 잡쳐질 만큼 가라앉아 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 또한 듣는 자의 또 하나의 기쁨이 아니겠는가?

이런 일을 하고 있자면, 주변에 노래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그 안에서도 그 무리를 이탈하고 있는 단 한 사람이 있다. 일본 음악계 전체로 봐서도 매우 크고 중요한 한 사람. 그리고 당신에게 있어서도 내게 있어서도 너무나 소중한... 노래하는 그 사람.

그는 작곡가로서도 너무나 멋진 면모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는 노래하는 사람이니까, 스스로 노래하는 사람이기에 비로소 좋은 노래를 만들어 세상에 선보일 수 있는 것 아닐까? 아, 이런 얘기야 지금까지 몇 번이고 써 왔잖아...

신곡「花」는 여자가 부르는 것을 상정하고 만든 노래라는데, 결국은 자신의 노래로 소화해 버렸고... 결국 총체적으로 정리해 한마디로 ‘그의 실력’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극찬해 마지않는다.  

TV에서「名もなき詩」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君が僕を疑っているのなら/この喉を切ってくれてやる’-이 얼마나 절절한 사랑의 고백인가!!
노래하고 있을 때의 사쿠라이와 취재 중 이야기 할 때의 사쿠라이는 역시 다르다. 노래하는 그는 흉폭하고도 다정하다. 음란하고도 아름답다. 상쾌하면서도 노골적이다. 세상의 모든 모순을 대면시켜 버린다. 그런 목소리의 소유자인 것이다.

영화『카스토라토』의 주인공 파리넬리. 그는 마치 락 스타처럼 묘사되어 있다. 작곡가의 형, 리카르도 브로스키가 쓴 악보를 달리는 마차의 차창 너머로 구겨 던져버리거나, 세상에서 알아주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면서도 음악 본질을 꿰뚫으려 하는 고민을 거듭한다거나... 그리고 후에 파리넬리의 인기 만에 영합해 작곡하는 형을 향해, “너무한 곡이잖아! 내 목소리는 잊어버리고 음악 자체만을 생각 하라구!! 마음을 울리는 곡, 진정한 감동을 전달하는 곡을 쓰란 말야!!!”-라고 강변한다. 그리곤 어릴 적 강요당한 굴욕을 가슴 한구석에 늘 품으며, 오늘도 그렇게 가창은 이어진다.

그의 목소리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무려 700여년 전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악보만은 전승되어, ‘이것이 진정 남자가 부를 수 있는 곡이란 말인가’-하고 경악한 것은 미국의 한 유명한 오페라 가수. 그가 파리넬리의 노래들을 부활시켜 놓았지만, 혼자서만은 좀처럼 완성하기 힘든 작업이었다. 그래서 스위스의 여성 가수를 초빙해 악보를 펴 놓고, (둘의 목소리를) 하나의 목소리로 모으는 작업에 들어간다. 두 사람의 목소리를 하나로 뭉치는 작업만 컴퓨터로 수행한다. 하나의 목소리가 되어 노래하는 두 사람. 사실 이런 작업은 프로 가수들에겐 굴욕적인 일이라고 메이킹 필름에서 한 스텝은 얘기한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의 굴곡을 넘어선 순간, 그 결과는 인간세상의 그것이 아닌, ‘신과 같은’ 음성으로서 재탄생한다. 그것이 거세라는 트라우마를 품고 살아긴 인간 파리넬리의 목소리인 것이다.

자, 여기 사쿠라이가 있다.
화려한 무대 위에, 마음에 드는 스튜디오 부스 안에, 차 안에, 사랑하는 것과 사람들로 둘러싸인 편안한 공간에서... 그는 노래를 부른다. 취재로 바쁜 촬영 스튜디오 안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무언가 부르고 있다. 그리고, 갓 데뷔한 그 즈음이라고 생각되는데, “일단은요, 노래한다는 그 사실 자체가 너무 좋기 때문에, 공연이 끝나면 바로 또 가라오케에 가곤 합니다.” 라고 했던 적도 있다.

노래하고 싶은 욕망, 노래하는 행위를 향한 일말의 집착 같은 것이 그의 재능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꾸준하게 좋은 곡을 쓰게 만드는 힘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저 정말 온몸을 깎는 고뇌의 시간 속에서 곡을 쓴다니까요?”-라고 사쿠라이가 말한 적도 있지만, 그런 비장감 따위, 지금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아를 해방시키는 박력으로 가득한 곡,「名もなき詩」는 분명 경이로웠다. 픽션의 정경을 뒤로 하는 어떤 리얼리티가, 그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이의 가슴 속에 푹!~하고 파고든다.    

이제 곧 Mr.Children의 새 앨범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선 또 어떤 노래를 들려줄 것인가? 노래들이 굉장히 생경하면서도 생생하고, 적나라하다는 소문이 돌고는 있는데... 또 그것들이 과연 사쿠라이의 목소리를 통해 어떤 식으로 전달될 것인가.

내 예상은 음... 공포, 꿈, 연애, 광기, 절망, 암흑... 그리고 격렬한... 단말마... (96년 6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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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앨범이 바로『深海』였다. 그것이 마치 숙명인 것처럼, 그는 스스로 살점을 뜯어내고, 피를 흘리며 노래하고 있다. 앨범 인터뷰 때도 그가 짓는 미소는 왠지 공허했다. 미스치루의 궤적을 뒤쫓아 갈 적에,『深海』를 기점으로 앞, 뒤를 나누는 일이 종종 있다. 심각하고도 장중한 심해로 잠수해 들어간 순수한 밴드의 영혼과 거기에서 다시 펄쩍 뛰어오르는 순간의 변함없는 미소. 그런 양면을 모두 가지고 있는 멋진 밴드가 이렇게 우리 가까이에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나는 너무나도 머릴 싸매고 글을 쓰거나, 괴롭게 대화를 나누거나 했었던 것 같다.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아무도 몰라.’ 이 한 마디를 이 지겹도록 긴 글의 결론으로 삼고 싶다. 너무 무책임하다고 스스로도 반문하면서도...

Mr.Children 따위 나도 잘은 모르겠다. 그런 되도 않은 거짓말은 던져놓으면서 난 또, Viesic쪽 사람들과의 회의에 참석하고, 라디오에서 준비 중인 미스치루 10주년 기념 방송의 구성을 부탁받고, 또  BREaTH에서는 홀로 외롭도록 나만의 작업에 몰두하며... 그렇게 끊임없이 Mr.Children의 일거리들로 바쁜 나날들이지만,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져 가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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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ILOGUE
10주년이라는 세월을 난폭하리만큼 아무렇게나 해쳐 나와, 다시 뒤돌아보고 적당량으로 축약해 보았다. 추억으로 남은 일, 잊어 버렸던 일, 이런 것 저런 것들을 잘 엮어서는, 결국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기분에 스스로 만족해 버렸다. 앞으로도 Mr.Children을 들으며 나의 시간, 그리고 당신의 시간들도 그렇게 흘러가겠지? 머, 그렇다고 해서 허구헌 날 그들의 음악만을 듣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느 날 그들이 갑작스럽게 해산한다고 하여도 내가 따라죽을 것도 아니고... 조금 슬픔에 빠질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아마도 그들의 결정과 의지를 묵묵히 따르고 존중할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이 쌓여있고 또 그들을 신뢰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러하기에, 미스치루 어떤 시절의 음악도 마치 한곡의 신곡처럼 즐겁게 감상하는 일이 가능하다. 이런 기쁨을 나에게 주어서 고마워요. 그들이 만든 음악을 들으면서, 때론 그들의 약간 귀엽기도 한 심술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또 혼자 웃어보기도 하면서, 이 밑도 끝도 없는 작업을 진행하는 시간들이 너무나 즐거웠던 것 같다. 그런 10년을 만들어줘서 너무나 고마워요.

자, 앞으로 10년, 그리고 더 후의 일... 아니야 고작 1년 후의 일도 아무도 모르는데... 하지만 예언자와 같은 이 보컬리스트만은 미래에 대해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건가? 무언가 느끼고 인식한 바가 있다면, 아쉬움 하나 남기지 않고 ‘음악’으로서 모두 토해내겠지? 그리고 난 조용히 그 음악을 듣겠지?

여기서 나의 파일은 모두 끝났다. 불완전한 채로... 아쉬움도 많이 남지만, 일단 여기서 끝이다.

언젠가 이 원고마감의 압박에서 자유롭게 풀려날 그 해방의 날을 마음속 깊이 기다려 본다. 단지 1분후의 나를 위하여...

(BREaTH, 2002년 6월 호 / 미스치루 10주년 기념 기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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