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기스라고 아십니까?
장어 엑기스, 녹용 엑기스 같이 즙만 짜낸 한약 같은 것 말고!!!
집에서 담가 먹는 엑기스 말입니다. 일종의 발효 식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 집에서는 매실 엑기스를 담가 먹습니다.
만드는 방법은 정확히 모르지만 설탕에 매실을 절였다 거르면 엑기스가 나온다고 하더군요.
맛도 달콤한 편이어서 물에 타 음료처럼 자주 마시곤 합니다. 그냥 먹기엔 좀 진한 터라 물에 타서 먹지요.
그러던 어느 날 요즘처럼 더위가 절정에 달했을 때
저와 동생들은 여느 때처럼 얼음 띄워서 매실 엑기스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저와 남동생 몫을 따르고 나니 한 사람 분으로는 조금 많고 두 사람 분으로는 모자란 양이 남더군요.
여동생에게 다 따라 버렸습니다. 뭐 물을 많이 타면 되겠지 싶었죠.
...그게 화근이었습니다.
얼음을 띄운 뒤 한번 잔 부딪히고 [대체 이걸 왜 했는지...] 마셨습니다.
시원하고 달았죠. 특히 동생들은 정말 맛있다며 거의 원샷 했더군요.
적어도 다 마신 뒤에는 괜찮았습니다.
괜찮았죠. 그 때는.
얼마 뒤 저와 제 동생들은 선풍기 앞에서 시체놀이를 하며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동생 상태가 좀 이상한 겁니다.
TV를 보면서 웃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좀 이상하긴 했지만 히죽히죽 웃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왜 울고 있냔 말입니다!!!
ㅇ_ㅇ ㅇㅁㅇ ㅇ▽ㅇ:::: !!!!
대략 저와 남동생은 이런 표정을 지었던 것 같습니다.
곧 엄마께서 달려오셔서 여동생의 상태를 살피셨습니다.
상태를 확인하신 후 엄마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애가 엑기스에 취한 것 같네."
...ㅡ_ㅡ ㅡㅁㅡ
할 짓이 없어 엑기스에 취하냐... 기가 막혀... 어이 없어...
이 매실 엑기스는 설탕에 절였다 거르는 것이라 앞에서 말을 했었습니다.
절인다는 건 김치에 소금을 뿌려 절이는 것 처럼 설탕을 뿌려 한 달 정도 저장하는 걸 말합니다.
그 한 달 동안... 엑기스는 상온에서 변화를 거듭하고... 거듭하여... 거듭해서...
반 술 상태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게다가... 날씨마저 더웠으니... 냉장고에 저장하지도 않은 엑기스가 어떻게 되었는지...
부글부글 끓어올라서...
동생은 히죽히죽 [그것도 엄청 소름끼치게!!!]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행각을 계속했고
엄마께서는 동생 머리에 물수건을 얹어주시며 달래셨습니다.
한 2시간 쯤 지나니 동생이 스르르 잠들더군요.
엄마께선 매실 엑기스가 지나치게 독해서 그런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독하긴 독했죠. 그치만... 동생 것만 지나치게 많이 탄 제 탓도 있는데...
다행히 그건 모르시는 눈치 시더군요. ㅡㅗㅡ
한참 있다 깨어난 동생은 모든 사실을 깨닫고 엄청나게 황당해 했고
그날 저희 가족은 엄청나게 웃었습니다.
[아마, 장담하건데, 제 여동생이 술을 먹게 되면 아주 재미있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요...ㅎㅎ]
그 날 이후로 제 동생은 엑기스를 절대 먹지 않습니다.
저와 남동생은 아주 잘 먹죠. 물론 물과 얼음을 타서.
지금도 저는 매실 엑기스를 먹으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 시원 달콤한 맛 뒤에 숨겨진 술 기운도 있다는 사실을.
그러고보니 어째 좀 어질어질 한 것이...ㅡㅁㅡ::::
헉~~알콜 놀이라....낼 새벽 요가 잘 하시길..^^:::[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