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아니면 ‘네가 없는 내 삶은 죽음이나 다름없다’라는 말도 잘 사용하고... 사랑과 죽음이 영원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사랑과 죽음은 곧 영원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말하는 또 다른 사람들... 사랑이나 죽음이 아픔을 뜻한다는 말도 그럴듯하고 정반대로 행복과 안식을 추구한다는 말도 그럴듯하다. 인간들은 옛날부터 사랑이란 것과 죽음이란 것에 대해서 사전적 정의를 초월하는 그 이상의 정의를 내리고자 무던히도 애써왔다. 그리고 그 둘의 공통점은 무엇이고 차이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하지만 ‘어느 쪽에도 설 수 있는’ 이 둘은 3차원으로는 그려낼 수 없는 형상을 지니고 있다. 결국 보이지 않는 진리를 둘러싼 전제와 그를 방해하는 궤변들. 수많은 종교와 사상들이 제시하는 그들의 다양성. 인간이 살아가면서 늘 부딪쳐야 하는 니힐리즘에 막혀 그렇게 인간들은 자신의 한 인생동안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만족스런 해답을 남길 수 없었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해낼 수 없다면? 우리는 그저 사랑과 죽음의 앞에서 체념한 채 그저 주어진 슬픔을 다정하게 또는 상냥하게 바꾸어가며 서로를 다독여 왔다. 그게 무력한 다수의 우리가 해온 최선의 방법이었다. 거기에서 개개인은 어렴풋이 ‘이런 것이 사랑이고 죽음이겠지’를 막연하게 추측할 뿐이었다. 결국 사랑과 죽음은 개개인이 내릴 수 있는 ‘정의’가 아닌 ‘추측’에 근거하는 것이다. 굳이 필자의 방식으로 정의를 내려야 한다면 나는 사랑과 죽음을 ‘자신만의 두려운 수수께끼’라고 표현하고 싶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사랑과 죽음이 설령 ‘똑같아’ 보인다고 할지라도 결국 이 둘은 자기 자신이 주체적으로 느껴야 한다. 남이 대신 해줄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느껴야만 한다는 조건이 있기에 사랑과 죽음은 결국 서로마다 다르게 ‘추측’될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은 추측만 가능할 뿐, 개인의 일생에 있어 평생 동안 정의를 내리기는 힘들다. 그래서 풀리지 않기에 ‘두려운’ 것이다. 두려운 것이라고 해서 어려워 할 필요는 없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늘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 죽음이다.
* 결국 花의 가사를 중간에 써먹었죠 -_-... 과연 철학 시험은 어떻게 되려나.
시험 잘 보시길;